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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관리자: 죽음 이후의 데이터를 지키는 새로운 직업

by 흑백파도 2025. 8. 22.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SNS 게시물, 이메일, 사진, 동영상, 금융 데이터, 심지어 게임 속 캐릭터까지 모두 디지털 자산이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 이 데이터들은 어떻게 될까? 계정은 방치되고, 개인정보는 유출될 위험에 처하며, 가족들은 고인의 흔적을 정리할 방법조차 찾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주목받는 직업이 바로 디지털 유산 관리자(Digital Legacy Manager)다. 이들은 개인이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지는 디지털 흔적을 정리하고, 필요한 경우 가족이나 후손에게 안전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마치 전통적으로 변호사가 유언장을 관리했다면, 이제는 온라인 세상에서의 ‘디지털 유언장’을 관리하는 새로운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유산은 개인이 온라인과 디지털 공간에 남긴 모든 흔적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개인 계정: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X), 블로그 등 SNS 계정

콘텐츠: 사진, 동영상, 문서, 음악, 창작물 등

금융 관련: 인터넷 뱅킹 계좌, 암호화폐 지갑, 온라인 결제 서비스

게임 및 가상 자산: 온라인 게임 아이템, NFT, 가상 부동산

커뮤니케이션 기록: 이메일, 메신저 대화 기록 등

이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때로는 금전적 가치를 지니기도 하고, 가족들에게는 정서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계정 도용이나 사생활 침해, 자산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의 안전한 관리가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왜 디지털 유산 관리가 필요한가?

①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

현대인은 평생에 걸쳐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생산한다. 사진만 해도 스마트폰에 수만 장이 쌓이고, 클라우드에는 끝없이 자료가 저장된다. 사후 이 모든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할지는 큰 문제다.

② 법과 제도의 공백

아직 많은 나라에서 ‘디지털 유산’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법은 부족하다. 일부 플랫폼은 계정 주인의 사망을 확인하면 자동으로 삭제하지만, 가족에게 접근 권한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유족이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③ 정서적·사회적 가치

고인의 SNS 계정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추억의 공간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 관리는 단순히 자산 정리를 넘어 애도의 과정과도 연결된다.

디지털 유산 관리자의 주요 역할

디지털 유산 관리자는 크게 다음 네 가지 업무를 담당한다.

사전 설계 (생전 관리)

고객이 살아 있을 때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획을 세운다.

예: 특정 계정은 삭제, 일부 자료는 가족에게 전달, 금융 자산은 법적 상속으로 연결.

사망 이후 관리

고인의 사망이 확인되면, 미리 작성된 계획에 따라 계정·데이터를 정리.

가족이 요청하는 경우 특정 자료를 추출·백업해 전달.

법적·기술적 지원

플랫폼의 정책과 법적 절차를 대신 확인하고 진행.

계정 접근 권한 확보, 데이터 복구 등 기술적 문제 해결.

정서적 케어

단순히 데이터 정리뿐 아니라, 고인의 흔적을 의미 있게 보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 온라인 추모 페이지 생성, 가족 맞춤형 디지털 앨범 제작.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

디지털 유산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법적 지식: 개인정보 보호법, 상속법, 저작권법 등 법적 제도 이해.

IT 기술 이해: 데이터 복구, 암호 관리, 보안 기술 등 디지털 자산 보호 능력.

심리·사회적 감수성: 유족과 소통하며 정서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감 능력.

기획 능력: 고객 맞춤형 ‘디지털 유언장’ 설계 및 실행.

국제적 시각: 글로벌 플랫폼의 정책과 해외 법률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성.

즉, 디지털 유산 관리자는 단순한 IT 전문가가 아니라, 법률·기술·심리·문화를 아우르는 융합 전문가다.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 서비스가 시작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과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생전에 ‘사망 이후 계정 처리 옵션’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기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전문 관리자의 역할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 NFT 등 디지털 자산이 증가하면서 재산적 가치가 큰 유산을 관리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금융권, IT 보안 업체, 법률 사무소 등이 디지털 유산 관리 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에는 ‘디지털 상속 전문 회사’가 등장하거나, 변호사·회계사와 협업하는 전문 디지털 유산 관리팀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죽음 이후에도 온라인에서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말, 사진, 생각, 거래 기록은 사라지지 않고, 때로는 후대에게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러나 이 자산을 방치한다면 가족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유산 관리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전문가다. 그들은 단순히 데이터를 지우거나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개인의 디지털 흔적을 존중하고, 가족이 이를 의미 있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미래 사회에서 디지털 유산 관리자는 변호사나 회계사처럼 상속 과정의 필수 전문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물리적 유산뿐 아니라 디지털 유산도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디지털 유산 관리자는 “죽음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디지털 시대의 길잡이”라 할 수 있다.